오늘 가을비가 하루종일 내렸다. 추웠지만 차분하게 가라 앉는 마음이 좋았다.
우산을 쓰고 마당을 거닐면서 저무는 가을을 숨쉬었다. 떨어지는 낙엽, 물기를 머금은 모과열매,
가을의 정취는 기억을 불러 일으켜 예전에 갔었던 우포늪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우포늪의 가을을 담긴 사진을 찾아보면서 그날의 햇빛과 바람이 지나가던 호수,
생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던 낡은 나룻배를 다시 기억해냈다.
겨울로 들어가는 계절에 찾은 우포늪,
혼자 걸어도 친구와 같이 걸어도 호젓한 늪길.
삶은 늘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에 서있다. 꿈을 담고 떠나는 길이 늘 행복 하지는 않지만
항상 길위에 있음에 감사한다.
자연의 사계는 내인생을 관통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닮았다.
봄부터 여름, 그리고 오늘까지 자연은 그들의 삶에 충실하고 그 삶에 대한 정직한 자세는 내 삶의 교훈이 된다.
여름엔 반짝임으로 생을 노래하던 나무, 오늘은 마른 바람소리로 시간을 향해 손을 흔든다.
초록빛 즐거움의 시간과 다가올 긴 잠을 실어오는 시간에게 보내는 인사...
아직 세상은 아름답고 나를 찾는 이가 있어서 행복한데 이세상의 시간은 언젠가 끝날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배. 언젠가 저 배를 타고 떠나야 할 그사람이 내가 아닐까.
지난 간밤의 찬기운은 성에가 되어 열매에 머물렀다. 그들의 만남은 태양빛과 더불어 사라지리라.
내 생애도 도중에서의 사랑도 그럴것이다.
이 계절은 어찌 이리 시리도록 아름다운가.
경건한 침묵을 간직한 자연은 무한한 그리움으로 마음에 사무친다.
잠에서 깨어나는 늪과 나무들의 움직임은 조용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아침을 여는 숲과 물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생물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곳마다 나무와 풀은 눈부신 빛을 반사하며 그들만의 빛남을 완성하였다.
누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든 하느님보다 더 완전한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
생기가 가득하던 시간을 보낸 자연은 이제 다시 올 긴 잠을 준비한다.
섭리에 순응하는 자연에서 나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신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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