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그곳

가을에 만난 천등산 봉정사

가별의 나무 2012. 10. 6. 00:07

시월의 둘째날, 추석연휴를 안동에서 보내기로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의 안내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에 올라오는 마지막날 혼자 찾아간 천등산 봉정사, 

안동역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탄  51번 버스는 약 30분정도 만에 봉정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절로 올라가는 산길 옆에 쌓아 놓은 작은 돌무덤, 누군가 하나씩 기원을 담아 올려놓았을 터,

옛날엔 나도 조금 흉내를 내본적도 있지만 손길이 섬세하지 못한 나에게는 어려운 작업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절집을 찾아 가다보면 조용한 산길에서 부터 마음이 가라 앉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의자로 사용되던 기억조차 사라진 의자에 이끼가 끼어있었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 자연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절집이 마주 보이는 텃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는 어린 스님, 연하고 푸른 잎은 점심공양에 쓰일것이다.

7세기경 봉황이 머문곳에 세워졌다는 산사는 호젓한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했다.

 

 

옛날 그대로의 품위와 단아함을 간직한 만세루, 천등산 봉정사의 대문. 단청이 입혀지지 않은 선비다운 고고함과 위엄을 느끼게한다.

오랫동안 나는 만세루의 풍정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봉정사의 역사가 배어 있는 목어, 법고, 운판, 범종각은 따로 옆에 있다.

신을 벗고 만세루의 마루를 밟으니 시원하고 정갈한 감촉이 좋았다. 마루를 건너가 난간에 기대어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았다.

아직도 어린 스님은 길가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울력을 하고 계셨다.

 

계절도 시간도 바람에 담아 흘려보내는 만세루, 그이름 처럼 오래오래 남는것은 절대자를 향한 믿음이 아닐까.

그 믿음에서 발원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 사랑, 그것이 천년, 만년의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가치일 것이다.  

 

 

이곳 봉정사에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만세루일까 생각했지만 설명을 읽어보니 만세루는 약 300년전에 지은 건물이었다.

그럼 그 오래된 건물은 어디있지? 돌아보니 극락전이라고 했다.

극락전은 최근에 해체 복원하고 칠을 새로 했기 때문에 방금 보고 돌아선 극락전이 한국에서 최고로 오래된

목조건물인것을 몰라 본 것이다.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 있는 석조여래 좌상, 오래되어 광배도 없고 많은 부분이 마모되었지만 중생을 바라보는 듯,

 수행중인듯한 무념무상의 얼굴이 평온했다.

 

 

 

옛날엔 아주 큰 사찰이었다는데 지금은 다른 절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다. 

 화려한 단청도 없고 담백한 향취를 풍기는 절집이었다.

복잡한 서울의 생활과 해야할 일들이 평화롭고 고요한 산사까지 따라오지 못하는구나 싶다. 

오늘 저녁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시작될 일과 관계들이  지금 이곳에서는 나를 흔들지 못하고 있다.  

 

 

              만세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길, 불자들은 이 문앞에서 합장을 하고 절 안으로 들어선다.

       봉정사의 정문인 이 문은 세속과 영적인 세계를 가름하는 곳이기도 하다.

 

       몇 십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때 꾼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말없이  마루밑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로

 나도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으로 내려가면 죽을것 같은 숨막힘과 두려움으로

 한사코 들어가기가 망서려졌다. 나는 마루 옆에 있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뒷뜰로 갔다.

  마루밑을 통과한 사람들은 뒷뜰에 모였기 때문이다. 뒤뜰은 원래 텃밭이었던 뒷뜰은 넓고 푸른 바다였다.

바다 저편에서 덫을 올린 큰배가 천천히 다가와 섰다. 마루밑을 통과한 사람들은 말없이 그배애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배를 탈 수 없었다. 마루밑 어둠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나는 그때 마루밑을 통과하지 못한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그 꿈을 떠올릴수 있지만 오랫동안 삶에서 좌절을 겪을때마다

 꿈에서 마루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기에  삶의 어려움을 통과할 수 없다는 내면의 최면에 걸려 있었다. 

   어른이 되어 그 꿈을 전문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내 꿈이 꿈은 무척이나 영성적인 것으로 

마루밑 어둠속을 피해 다른 길로 나갔던 꼬마의 행동은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말하셨다.

이미 그때는 어릴적 그꿈이 나를 속박하지 못하던 때이긴 했지만 그꿈이 영적인 것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었다. 

오늘 이승과 이승과 극락을 상징적으로 가르고 있는 만세루에서 새삼 그꿈이 떠오른 것이다.

        

 

  

 

 

 

 

봉정사경내를 지나 영산암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던 작은 열매, 가을에 자주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름은 모른다.   

 

절집이라기보다 양반집 사랑채 같은 모양새가 마음을 잡아 당겼다. 툇마루에 앉아 기둥에 머리를 기대니 시간의 흐름이 멈춘것 같다. 

절간에 흐르는 고요에 압도되어 발소리를 줄이고 둘러보았다.  작은 방 문 앞에 놓인 청렴한 신 한켤레.

주인은 지금 무엇을하고 있을까? 책상 앞에 앉아 수행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곳에, 이시간에 머물고 싶었다. 걱정도 근심도 가라 앉은 산사의 순간을 즐긴다. 

 

 

절 입구에 있는 사연이 가득할것 같은 소나무의 뒤틀림

 

 아쉬움을 남겨두고 내려오는 길옆으로 보이는 옥류정, 가을 햇살에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바위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한 이곳은 여름이면 무성한 숲에 가려지겠지만

사람들은 물소리를 따라 정자를 찾아 들었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길을 천천히 걸었다. 지금 가을, 

               봄부터 여름, 오늘까지 수고한 농부의 손길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아름다움이 사무친다. 다시 오지 않을 단 한순간임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라는 책을 펼쳐 놓고 나를 이끄시는 하느님께 감사한다.

                        산사에서 느낀 정결한 고요와 자연에서 만난  풍요로움은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도전 할 수 있는 힘을 채워주었다. 봉정사, 고요가 머무는 절, 나는 사랑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