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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휴, 다 올라왔다. 손전등에 의지하여 어둠을 뚫고 올라온 노고단, 성삼재에서 출발할 때 보다는 무게가 덜한 어둠이 아직도 짙게 깔려있다. 이곳 저곳 우리보다 먼저 산장에 도착한 사람들의 형체가 보인다.우리는 산장의 불빛이 비치는 곳에 있는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교대로 화장실을 다녀 온 후 각자 배낭에서 빵을 꺼내 이른 아침을 먹었다. 옆으로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간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어둠은 아직 잠자고 있는 새벽을 깨우기가 뭣한가 보았다. 어둠속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긴장감과 맞물려 노고단에서 맞는 차가운 공기는 거의 한 시간여를 걸어온 열기를 가라앉힌다. 앞쪽으로 노고단 정상이 벽처럼 우뚝 서있다. 새벽을 감싸 안은 어둠속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형체가 일렁대며 지나친다.구월, 산속의 새벽 다섯 ..

시마을 글동네 2026.07.20

오월의 모자이크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소식은 가끔 듣고 있었어요.”“수녀님, 어서오시요이,”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온 택시에서 중년의 수녀가 내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흰 머리칼이 듬성한 키 작은 남자가 다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남자의 집 옆에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나무는 벼락 맞아 갈라진 부분을 시멘트로 때우긴 했지만 짙은 갈색으로 엉겨 붙은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은행나무를 건드리자 가지에 붙어 있는 숱한 아기 손바닥 같은 연한 잎들이 햇살에 부서지며 반짝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그들은 은행나무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 은행나무 참 멋지네요.”“여그, 이 나무가 그때의 일은..

시마을 글동네 2026.07.20

어떤 만남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네, 곧 준비해 드릴게요.”점심시간에 한바탕 손님을 치른 후의 노곤함이 몰려오는 시간, 나는 기계적인 응답과 함께 카운터에 놓여진 카드를 받아 처리한 다음 카드를 카운터에 올려 놓으면서 비로소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어머!”“선생님!”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짧은 순간  말을 잃었다.화들짝, 졸음이 달아난다.이게 누구야.“와! 선생님, 살다보니 이렇게 만나는 날도 있네요.근데 별로 변하신 게 없네요. 전, 사 년 전에 결혼 했어요.작년부터 이 커피숍을 남편이랑 함께 하고있어요.세살짜리 딸 하나는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셔요.”칠 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뜻밖의 장소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을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당황스러워..

시마을 글동네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