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 글동네

오월의 모자이크

가별의 나무 2026. 7. 20. 21:57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소식은 가끔 듣고 있었어요.”

수녀님, 어서오시요이,”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온 택시에서 중년의 수녀가 내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흰 머리칼이 듬성한 키 작은 남자가 다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남자의 집 옆에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나무는 벼락 맞아 갈라진 부분을 시멘트로 때우긴 했지만 짙은 갈색으로 엉겨 붙은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은행나무를 건드리자 가지에 붙어 있는 숱한 아기 손바닥 같은 연한 잎들이 햇살에 부서지며 반짝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그들은 은행나무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 은행나무 참 멋지네요.”

여그, 이 나무가 그때의 일은 물론 그 이전의 일도 모다 기억하고 있지라.”

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들은 얼굴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싯고온 바람은 그들을 예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1980년 오월, 19

하늘이 맑은 시원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날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며 성당의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들은 속속 성당 마당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야외로 소풍을 나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일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동민과 신학생은 아까부터 말없이 뒷짐을 지고 마을만 내려다보고 서 있는 본당 신부의 등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신부님,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의외로 신부는 교장선생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마을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장선생은 다시 신부님께 야유회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때야 신부는 뒷짐 진 손을 풀며 교사들 몸을 쪽으로 돌렸다.

지금, 그렇게 놀러 다닐 때가 아닌데…….”

“?”

가벼운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있던 젊은이들은 당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다녀오라고, 함께 가고 싶지만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유감이라고 말씀하시더니,

며칠 전부터 광주는 지금 전쟁터라던데,”

하시며 그분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 얼굴로 신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제 한밤중에 밤중에 광주에서 한 젊은이가 성당을 찾아왔어. 술에 취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는 거야. 그에 맞서 시민들이 일어났다더군.”

밤에 신부를 찾아온 젊은이는 또 다른 성당을 찾아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 밤으로 다른 성당을 찾아갔다고 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교사들에게 신부님은 그런 줄이나 알고 있으라면서 이왕 가기로 한 소풍이니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멋쩍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 예당저수지로 향했다. 차가 읍내를 벗어나자, 신부님의 우울한 모습을 성당에 두고 온 젊은이들은 모두 차창밖을 내다보며 환성을 질렀다. 느닷없이 듣게 된 신부님의 무거운 말을 생각하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차는 비포장도로 접어들었고 곧이어 강처럼 길게 누운 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 저수지의 물은 잔잔했고 맑은 물속으로 수초가 일렁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은 차 뒤편에서 낚싯대를 꺼내 미끼를 달아 저수지에 던졌다. 몇 명의 여학생은 버너와 준비해 온 음식물들을 내려놓고 산그림자가 어린 저수지의 풍경을 즐기며 산책했다. 남학생들과 제법 용감한 여학생이 나룻배에 올라타 노를 저어 물 가운데로 나갔다. 제각기 자연을 즐기던 얼마 후, 남학생 하나가 낚시에 걸린 붕어 몇 마리의 배를 따고 물에 씻어서 마늘 양념이 든 고추장을 풀어 버너 위에 얹었다. 제법 그럴듯한 냄새를 피우며 찌개가 끓기 시작하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일행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 맛있겠다. 들뜬 소리로 떠들어대며 맥주와 콜라로 건배하는 소리, 모두 신나서 먹고 마셨다. 그런 중에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신부님 말씀 정말일까? 신문이나 라디오에선 그런 말이 없었는데.”

글쎄, 나도 그게 이상해. 믿어지지 않아.”

어젯밤에 내가 사제관에 있었는데 신부님을 찾아온 청년이 있었어. 그 사람이 신부님하고만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내가 자리를 피해 드렸어. 아마 그 사람일 거야

주말이어서 집에 다니러 온 신학생이 말했다.

그 학살 배후에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있대.”

전두환이 누구예요?”

작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 광주 지역 사단장이던 사람이야. 첨엔 별 하나였는데 몇 달 간격으로 별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대장이 돼서 군대의 명령권을 가졌어.”

아마 그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하던걸.”

남학생들은 이리저리 들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계엄령하에서 갑자기 부상하고 있는 얼굴 없는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전혀 모르는 얘기들이었다. 주일학교 삼 학년 담임인 경희는 일어서서 물가에 서 있는 나룻배 옆으로 갔다. 배안을 들여다본 경희는 배 밑창이 물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올라탈까 말까 망설였다. 그 모습을 본 동민이 다가와 먼저 나룻배에 올라타고 손을 내밀었다. 경희는 그 손을 잡고 흔들리는 배 위로 올라타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민이 노를 물속 깊이 밀어 넣어 배를 땅에서 밀어냈다. 동민은 양손으로 노를 저어 서서히 저수지 가운데로 들어갔다. 친구들이 두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저수지에서 보는 육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녹색이 올라오는 수양버들이 물가에 늘어져 있었다. 멀리 분홍빛으로 만발한 과수원이 보였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몇 개 떠 노닐고 있었다.

! 너무 좋다.”

경희의 즐거운 표정을 동민이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배는 제법 저수지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었다.

노 젓기 힘들지?”

아니, 요령만 알면 그리 어렵지 않아.”

동민은 노 젓기를 그치고 노를 양손에 잡았다. 배는 물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경희야. , 다음 달에 군대 간다.”

경희는 아무 말 없이 뱃전에 부딪치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 내가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니?”

갑작스런 동민의 말에 경희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동민은 경희의 침묵이 걸렸다. 그러나 재차 확인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배는 제법 멀리까지 흘러와 있었다. 동민은 노를 저을 준비를 하면서 경희를 바라보았다. 경희는 계속 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해. 뭐라고 대답을 못 하겠어.”

동민의 간절한 눈빛을 느꼈지만, 경희는 그만 친구들한테 돌아가자고 재촉했다. 두 사람이 노를 저어 뭍으로 돌아왔을 때 일행은 짐을 정리해서 차에 실어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했다. 하루 종일 노는 것도 일이라고 대부분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희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은 심란했다. 앞으로 동민을 어떻게 대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미사 때부터 신부님은 강론 시간에 광주에서는 지금 죄 없는 살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광주로 통하는 길은 모두 통제되고 모든 통신수단도 끊어졌다고, 동족 간의 전쟁이 재연되고 있다면서 계속 기도 하자고 말씀하셨다. 한국에서는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의 사태를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이 말은 진실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경희와 아버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신부님의 강론으로 이어졌다. 신문과 라디오의 정보로 세상을 보는 평범한 국민인 아버지는 신부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어 하셨다. 성당에서 사목회장직을 맡고 있는 분이었는데도 그랬다.

신부님 말씀이 사실일 리가 있니? 신문엔 그런 말 한마디도 없던데.”

아버지는, 신부님은 거짓말 안 하세요.”

아무려면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라구.”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요.”

사실 경희는 신부님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의심을 반박할 확실한 증거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근데 광주가 그러면 오빠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경희의 걱정에 아버지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오빠 경수는 광주 상무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군인이었다. 광주의 소문이 진실인 것 같은데 소식을 알 수 없어 궁금하고 불안한 날을 보내던 어느 날 경수가 불쑥 집 대문을 들어섰다. 특별 휴가를 나왔다는 것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가족들은 모두 반색했다. 싱긋이 웃는 경수의 모습에서는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빠,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 별일 없으니까 이렇게 왔지.”

몇 번씩 신부님한테 들은 이야기들을 확인하는 아버지에게 경수는 계속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모두 헛소문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무사했겠느냐고,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듯이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경수는 신부님께 인사하러 성당에 가자는 경희의 말을 거절했다. 경희와 둘이 있을 때만 경수는 가끔 앞뒤가 없는 말들을 슬쩍슬쩍 내비쳤다.

부대에 잡혀 온 애들 정말 불쌍하더라. 달리고 팬티만 입혀서 양손을 뒤로 묶어 놓고 감시하는데. 거리에선 그렇게 반항하던 놈들이 막상 잡혀 들어오면 겁나서 지레 죽어.”

이런 말도 했다.

잡힌 애들이 겁내니까 선임들이 더 얕보는 것 같아. 별것 아닌데도 발길로 차고 욕을 해댄다.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야.”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경수가 있는 부대의 사단장이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거구나. 오빤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한 거야? 경수의 말을 대충 종합하면 광주에서 일어난 폭동의 주역은 외지에서 온 군인들인 모양이고 자신은 잡혀 온 시민군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던 것 같았다. 갇힌 자나 지키는 자나 다 같은 형제들이 아닌가. 경희는 악역을 맡은 오빠가 불쌍했다. 부모님께 얼굴을 보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시킨 후 경수는 며칠 후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경희는 오빠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성당의 신부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드러내서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근원지를 모르는 흉흉한 소문들은 잠들 줄 몰랐다.

 저수지로 소풍을 다녀온 후에도 동민과 경희는 겉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 그러나 경희는 동민이 늘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걸 알았다. 경희는 동민이 좋은 사람인걸 알고 있었지만하느님을 따라 살고 싶어 서울에 있는 한 수녀원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않았다.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의 유한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하느님께서 준비하는 계시다는걸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월도 중순이 넘어가는 어느 날, 경희는 수녀원의 연락을 받고 기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가는 길은 삽교호를 지나야 했다. 그곳은 작년 10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준공식에 참석한 곳으로 박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 십 미터도 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그날 밤, 대통령은 측근의 총에 저격당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며칠 동안 정규방송을 멈추고 장중하고도 슬픈 음악을 내보냈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종의 최면 상태에 가까운 효과였다. 지도자를 잃은 한국은 그렇게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순박한 사람들은 경희처럼 감정에 휩쓸려 집권욕에서 빚어진 만행으로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한 권력자의 실상을 잊고 좋은 지도자를 잃은 국민이 되어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렇게 삽교호는 박 대통령이 참석한 마지막 현장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졌다.

 그로부터 일 년도 안 되어 국가원수라는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권력을 향한 자들의 욕심은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지나가는 거리 곳곳에 군인들이 서 있었다. 버스는 몇 번이나 군인들의 제지를 받아 멈춰 섰고 그때마다 무장한 군인들이 올라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버스 안을 훑어보았다. 특히 남자들은 노인을 제외하고는 군인들의 세심한 눈초리를 받았다.

 편치 않은 기분으로 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경희는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혜화동으로 갔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수녀원 피정의 집에서는 시국을 위한 기도 모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경희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실상을 찍은 영상물을 처음 보았다. 화면 상태가 좋지 않아 상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검은 형체의 무장한 군인들이 쫓기는 젊은이들을 총으로 밀고 내리치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독일인 기자가 촬영하여 세계로 알렸으나 막상 한국에서는 비공개된 필름이었다. 비디오 상영이 끝나고 경희를 초대한 수녀가 광주 시민들을 돕기 위해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피가 부족해서 부상자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에 수녀들은 다투어 헌혈하고, 한편으로는 급하게 모포와 비상약품들을 준비해서 몇몇 수녀들이 새벽 일찍 광주로 떠났다고 했다. 총검을 든 군인들의 검문을 몇 번이나 거치고 저녁때가 다되어 도착한 광주는 초입부터 아스팔트가 피로 얼룩져 있었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부패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 숨쉬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죽음의 무거운 공기가 내리눌러 말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한 채 갖고 간 물건들을 내려놓고 돌아왔노라고.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수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날의 기도 모임은 경희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골로 내려온 경희는 동민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저녁 무렵 약속 장소에 나타난 동민은 설레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읍내 시가지에 약간 벗어난 냇가로 나가는 길에 동민은 시장에 들러 경희가 좋아하는 딸기를 샀다. 한낮의 불붙는 듯한 태양이 사라진 저녁은 바람이 시원했다. 멀리 원두막에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따금 그들 곁으로 자전거가 지나갔다. 맑은 하늘에 뜬 구름사이로 차오르는 달이 떠 있었다. 그들은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민은 흐르는 물에 딸기를 씻어 와 경희에게 건넸다. 딸기를 받아 든 채 경희는 말을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만나자고 한 것은 할 말이 있어서야.”

어둠 속에서 동민의 긴장감이 경희에게 전해졌다. 경희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나 수녀원에 가기로 했어.”

! 동민의 가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경희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만약에 결혼하면 상대는 너야. 하지만 수녀가 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인 것 같아. 수녀가 되어 가난하고 약한 이들 편에 서서 살고 싶어.”

동민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꼭 수녀원엘 가야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 잘 살도록 기도해 줄 거지? 나도 널 위해서 기도할게.”

딴청을 피우는 경희의 말에 동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폭, 소리를 내며 달맞이꽃이 피어올랐다.

어머나, 저것 좀 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린 경희는 자신이 한 말이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동민이 손을 내밀어 달맞이꽃잎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518일 밤을 틈타 전국 성당을 찾아다니며 광주의 진실을 전하던 그 청년은 경희가 다니던 성당으로 돌아왔다. 본당신부님의 배려로 신분을 감추고 성당의 잡일을 하며 육 개월 정도 머물렀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아버지는 광주 근교에서 건축업을 크게 하는 분의 외아들이었다. 당시 서른 중반을 넘은 그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빈둥대며 지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광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사건이 있던 날은 친구들과 시내의 성당에 있었다고 한다. 어둠에 덮여 버린 광주는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되고 철저히 고립되었다. 상황을 파악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민군이 결성되었고 교구청에 모인 신부들은 대책을 논의하고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광주를 벗어나 전국으로 흩어져 갔다. 그들은 군인들이 점령한 도로를 피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얼떨결에 광주 사건의 메신저라는 중요한 임무를 띤 그도 죽음을 무릅쓰고 진실을 전하기 위해 밤을 틈타 끊임없이 걸어서 광주를 벗어났다. 그 사건은 무위도식하던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경희가 수녀가 된 후, 6.15 민주항쟁 때 명동의 들머리에서 열린 기도 모임에 참석했을 때 모인 사람 중에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것도 같았다. 가끔 해방신학을 주제로 한 책의 번역자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경희는 그와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던 것이다.

 

사십이 다 되어 결혼한 그의 아내가 집에서 잣을 띄운 차가운 오미자차를 내왔다. 경희는 그가 결혼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부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부인도 광주 민주항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고 했다.

이 사람은 그날 광주 시내에 있었다오.”

516, 계속해서 시위를 하던 시민들은 다시 한번 정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들은 해산하면서 돈을 모아 대치하던 전경들에게 막걸릿값으로 전해주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계속 광주 전역에서 예비검문은 계속되었다. 정부가 그들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광주를 빠져 나가거나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기 시작했다. 그날 부인은 직장에서 퇴근하여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어딘지 모르게 점점 조여 오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면서 쾨쾨하고 매운 공기로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것이 최루가스 때문인 줄은 후에 알았다고 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에 뒤돌아본 큰길에는 두 대인가? 석대인가 지프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차 뒤편에는 매무시가 흩어져 속옷이 드러난 여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놀란 그녀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다. 엄마쯤이나 지넜을까 겁먹은 마음을 추스리고 알아보니 시내 곳곳에서 이미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날이 밝자 즉시 금남로에 있던 가톨릭센터를 찾아가 투사회보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곳이 5층이었는데 몰래 창문 밖을 내려다보면 별게 다보이더랑께요. 전화박스 안에 있던 청년이 대검에 찔려 쓰러지는 것도 보고, 트럭을 길에 세워놓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무조건 잡아서 태우는디, 트럭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면서 젊은이들을 포복시키고 토끼뜀을 시키고, 재수 없으면 곤봉으로 마구 때리더라고…….”

그 말을 듣는 경희의 머리엔 그 당시 휴가를 나왔던 오빠 경수의 말이 생각났다. 애들이 파랗게 겁에 질려 있더라는,

 광주 도청을 점거한 시민군은 도청의 대강당에 희생자들의 유해를 안치했다. 그곳으로 밤도 낮도 없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그의 부인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오빠 때문에 상심한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오빠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도청 대강당에서 피투성이가 된 오빠의 시신을 어렵사리 확인 할 수 있었다.

거시기, 우리집사람의 오빠는 나와 막역한 친구였소.”

이층에 시체가 너무 많았는데 관이 모자라 그냥 쌓아둔 곳을 오가면서 시체의 발도 밟고 손도 넘어가고,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디 어느 날 갑자기 그 느낌이 살아나면서 숨이 탁 멎는 것 같었슈.”

부인은 말을 끊었다. 은행나무 언저리를 맴돌던 바람도 잠잠해져 모두들 은근한 더위 속에 흐르는 긴장을 느꼈다. 그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야반도주하던 날 밤, 그는 생전 처음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고 했다. 그 경험은 밤처럼 두려웠지만 그만큼 그 두려움을 마주 바라보게 하는 절박한 용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죽어도 이 진실은 전해져야 한다는 사명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넘어서게 했다.

 그가 몇 개월여의 피신 기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이후 돌아본 광주는 그날의 악몽에 신음하고 있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동지애로 꽁꽁 뭉쳤지만 그만큼 또한 분노와 원한을 마음에 쌓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한국에 사는 어느 누가 동족 간의 전쟁이 광주에서 발생할 그것이라는 걸 꿈이라도 꾸었을까. 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금남로를 시작으로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집에 있던 현금을 모두 꺼내 들고 다시 광주로 들어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시립병원이었다. 그날의 상처로 장기 입원 중인 환자 가족들에게 가져간 돈을 나누어 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밤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가 은행나무 곁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지명 수배자였다. 그러나 그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 또한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밤으로 그는 자신을 찾아온 지명 수배자를 아는 신부님이 계시는 시골의 한 수도원으로 피신시켰다. 한편으로는 민주화 운동을 한 친구의 가족들을 돌봤다.

 그러면서 그는 내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의문과 싸워야 했다. 하느님이 지금쯤은 뭔가 하셔야 하지 않을까, 바로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원하시지 않으며 그 고통을 걷어 가는 것도 가능한 분이 아니시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통스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보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그는 진정한 기도는 외침이요 울부짖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하느님은 힘없는 민중과 함께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는 남미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서반아어(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이 되어 가난과 고통, 죽음까지를 체험한 예수만이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들 걱정에 병을 얻은 아버지는 그가 집으로 돌아온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아버지가 하던 건축 사업을 이어받았다. 그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출판사를 차리고 해방신학 서적들을 번역하고 출판해 냈다. 그는  어눌하고 가끔은 더듬대기도 하는 언변과 소탈함을 넘어서 후줄근하기까지 한 외모에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를 감추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바꾼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을 잊지 못하는 그는 환갑이 훨씬 넘은 지금 마지막 번역 작업이 될지도 모를 남미의 영성 대사전 번역을 계속하고 있다. 신앙은 자신이 믿는 것이 보이는 모습으로 응답하지 않을 때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한다. 그의 이런 믿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분은 뼛속까지 바뀐 삶을 살고 있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심이겠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수녀가 되긴 했지만, 생활에 안주하여 처음의 마음을 잊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면서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탄식으로 그 탓을 밖으로 돌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경희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서 작은 은행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경희에게 오빠의 안부를 물었다.

 

 5,18 당시 광주에서 복무했던 오빠 경수는 그해 가을 경희가 수녀원에 들어온 후에 제대를 하고 대학에 복학했다. 그러나 그는 달라졌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여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다. 그러다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런 오빠를 보다 못한 부모님들은 결혼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자가 된 것처럼 술을 끼고 살았다. 그의 술버릇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부모님은 다 큰 아들 걱정을 놓을 새가 없었다. 오빠의 심한 술버릇을 참다못한 올케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는 사돈에게 늘 면목 없어 하셨다. 언젠가 경희가 집에 내려갔을 때도 경수는 혼자서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경희를 보더니 무안해하던 것도 잠시, 경수는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수녀, 난 광주에서 내 인생이 끝났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군인이었어. 군인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한다고그때 내가 지키던 애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정말 미칠 것 같다. 사람들이 그때 이야기를 하면 날 보고 욕을 하는 것 같아. 전두환 편을 든 놈이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는 놈들 그놈들은 잘한 거 뭐 있는데?”

경희의 말을 들으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도 피해자 중의 하나였다.

 

어느덧 기우는 해에 은행나무 그림자는 동쪽으로 길게 돌아가 있었다. 바라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며 산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그들 곁에 앉아 있던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그는 일어서서 은행나무의 거친 둥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 나무 내가 가끔 막걸리도 멕이지유. 일 년에 한 번, 언젠지 아실랑가?”

광주 민중 항쟁이 난 뒤 칠 년 후에 증말 우리나라 사람덜이 큰일을 해냈지. 민주화에 한발을 크게 내 딪었으니, 허나 그것이 518일을 기점으로 시작됬다고 해도 될 거요. 이걸 보셔. 이 나무는 육이 오두 광복절두 다 겪었지라. 여그 어딘가는 총알이 지나간 자리두 있소. 벼락두 맞었네. 상처는 사라져도 흉터는 남으니께, 그런디두 이렇게 우람하게 서서 새잎 내구 오는 이 가는 이에게 그늘을 주지요잉.”

경희도 말없이 그를 따라 푸른 잎사귀를 흔들고 서 있는 은행나무의 투박한 결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밀려오는 황혼을 등지고 선 나무는 천천히 가지를 흔들어대며 어둠 속에 잠겼다. 산촌에 내리는 어둠 속에 내일의 아침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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