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는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서울 남부 터미날에서 무주행 버스를 탔다.
원래 계획은 작년처럼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에 올라가 산행을 하고
삿갓재 대피소에서 일박, 다음날은 삿갓봉, 남덕유산을 거쳐 육십령고개로 하산하리라는
야무진 꿈을 꾸었지만 무주리조트의 곤돌라 정거장에서 계획이 바뀌고 말았다.
이유는 야생화보호를 위한 등산로 폐쇄 기간이 오늘까지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까지는 올라갈 수는 있지만 6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향적봉으로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택시를 불러 안성탐방소로 이동해서 산행을 시작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한 시가 되고 있었다. 여기부터 동엽령까지는 3,4킬로미터의 거리다.
내걸음로는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동엽령에 도착할 것이었다.
산길로 들어서자 계곡의 풍성한 물소리가 따라온다.
안성 탐방소에서 동엽령까지 가는 길 삼분의 이 이상을 계곡과 함께 걷게 된다. 산자락이 깊어서 그런지 이곳의 계곡엔
언제나 풍성하게 물이 흐르는것 같았다.
근처의 칠연폭포 방문은 생략했다. 폭포를 들르는 시간도 아낄겸 계곡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웅장함을 볼수 있어서다.
첫여름의 숲속은 상큼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나를 따라왔다. 초여름 숲속은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한다.
천천히 으면서 쉬면서 동엽령에 올라서는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 옆에 있는 ‘참 샘’이라는 표지를 발견했다.
여기 샘이 있었던 것이다. 작년엔 바쁘게 내려오느라고 볼 수 없었는데…….
맑은 물을 충분히 마시고 빈병에도 가득 채웠다.
드디어 동엽령, 사방이 탁 트인다.
목재로 만든 전망대에 앉아 겹겹이 펼쳐지며 옅어지는 아련한 산자락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저 산자락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부른것이다.
동엽령을 지나 삿갓재로 가는 길, 작년에 이곳에서 쉴때 한 사람이 이길을 넘어 오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저 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되었다. 잠시 쉰 덕분에 기운을 되찾았으니 힘있게 걸음을 내딪기 시작했다.
능선길을 따라 서늘한 나무숲길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활짝 핀 연분홍 산철쭉 때문이었다.
탐스러운 진분홍빛 꽃그늘 아래서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산철쭉이 핀 숲길을 벗어나면 양편으로 펼쳐지는 산자락이 이어져 길은 지루할 새가 없었다.
날씨가 흐려졌다. 예상보다 해가 더 일찍 지는 것인가.
하지만 오백 미터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판에 도착지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다.
무룡산부터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잠시 주변을 바라보고 숲길로 들어섰다.
무룡산에서 내려다 본 삿갓재 대피소 방향풍경
숲속을 벗어나자 갑자기 삿갓재골 대피소 사립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대피소로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드디어 왔구나.
삿갓재골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일곱시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다시 무룡산 – 동엽령(6,3킬로)까지 가서 – 백암봉 – 중봉-향적봉-설천(4,2킬로)까지 가서 곤돌라를 타고
하산하기로 했다.
어제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무룡산, 동엽령까지 가서 백암봉 쪽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삿갓재- 남덕유산을 거쳐 육십령고개롤 가려고 했는데 조금 무리하는 것 같아 코스를 바꾼 것이 너무
잘한 것이었다.
동엽령을 지나 백암봉으로 가는 길은 본격적으로 산철쭉 군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리라고 생각 못했는데, 백암봉을 지나 덕유평전에 펼쳐진 산철쭉의 향연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널따랗게 펼쳐지는 산자락과 함께 천상화원이 여기구나 싶었다.
평지보다 조금 늦게 피는 산철쭉을 시작으로 덕유산은 이제 야생화의 천국이 시작된다는 말을 알아들었다.
이쯤해서는 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어제는 산길에서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고 입산금지가 해제되어서인지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향적봉에서 설천봉까지 구간의 주목군락지에는 유난히 푸른 하늘과 산철쭉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일박 이일의 산행이 만족스럽고 고맙다. 이제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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