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떠 창문 커튼을 들췄더니 자욱한 안개로 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오늘 주산지에 가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다 해도 뚜벅이 신세인지라 청송 읍내서 들어오는 8시 버스를 탄 나는
제발 이 짙은 안개가 조금이라도 늦게 걷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주산지는 이번에 두 번째 가보는 곳이라서 예전에 가졌던 환상은 없었지만
아침 안개에 싸인 작은 호수에서 뭔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다.
주왕산 정거장에 들러 주산지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8시 20분이 조금 넘었다.
부지런히 호수가로 갔을때는 안개는 걷히고 없었다.
지난주까지 만해도 단풍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호수가에 있는 나무들은 바람이 불때마다
마른 잎새를 흩날리고 있었다. 그냥 호젓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물속에 잠겨 자라는 늙은 왕버들나무는 죽어버린 것처럼 둥치만 남아 있었고 산책로
끄트머리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몇그루 있었다.
삼백여 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주산지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이 고요하지 못해서일까.
조용히 오가는 물결은 봄을 지나 여름의 뜨거움, 그리고 저무는 가을의 모습을 받아 안았을테다.
춤추듯 날리는 마른 나무와 스산한 주변의 풍경이 주는 여운은 점차로 밀려드는 여행자들의 말소리, 발소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작은 숲길은 단풍이 한창이었을 때 참 아름다웠겠다 싶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주산지를 찾아왔을터이다.
나는 자주 가을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사라진 후에 여행지를 찾는다. 한창때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먼 하늘이 보이는 빈 나무의 쓸쓸함이 좋아서다. 죽지 않고 겨울잠을 준비 하는 나무는 인내와 기다림을
가르쳐준다.
'쉼이 있는 그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를 위한 기도 (0) | 2022.03.15 |
---|---|
간월재에서 가을을 보내다 (0) | 2019.12.01 |
가을과 겨울 사이 (0) | 2018.11.22 |
백련사. 무주구천동 (0) | 2018.06.04 |
경주 기행3 (0) | 2018.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