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가을이 가기 전에 영남 알프스 간월재의 억새밭을 보리라 맘먹고 기차를 탔다.
몇년 만에 온 동대구역에는 지인이 마중나와 있었다.
대구의 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 밀양 죽림굴을 지나 간월재로 오르는 길로 안내했다.
좋은 친구와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웠다. 처음 만나는 영남 알프스자락이라니...
꼭 와보고 싶었던 산이다.
산길을에 들어서기도 전에 맑고 청량한 바람과 공기로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서울의 생활을 잊고 금새 산과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길에서 벗어나 오른 편으로 올라갔더니 어둑한 굴 입구가 보였다. 박해때 천주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굴이다.
예전엔 굴 입구에 조릿대가 가득해서 굴입구를 알아 볼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림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으로 는 150여명은 족히 둘러 앉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신자들은 이곳에 숨어 살면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날까봐 생쌀을 불려 씹어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잠시 머물러 신앙선조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 어떤 힘으로 삶과 생명을 바쳐 신앙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선조들의 믿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간월재를 올라가는 길에 죽림굴을 들러 순교시대 신자들의 삶을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좋았다.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살쌀한 듯 서늘한 바람과 늦가을 경치로 힘든줄 모르고 올라간다.
억새의 축제가 끝난 빈 들, 억새가 가득한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왔는데 이곳의 가을은 너무 빨리 지나간것 같다.
내가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겠지. 모두가 떠나고 바람이 지난가는 빈 가을 또한 좋다.
드디어 찾아온 간월재. 산과 산 사이이에 펼쳐진 평원, 다른 산들과 다른 산세로 산과 산이 겹쳐 있어 특이하게
느껴졌다.
넓은 평원에 억새철이 끝나 등산객 수가 많지 않았다.
배냇재를 향하여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간월재 산장과 길
산길을 걷다 걸음을 멈추고 골짜기를 내려다 볼때마다 감탄사를 멈출수 없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채색된 골짜기들이 억새를 보지 못한 마음을 채워주었다.
열린 하늘에서 골깊은 산자락으로 쏟아지는 빛은 간월재와의 만남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었다.
마지막 남은 억새 몇가닥을 담고 산에서 내려 오는 길, 넉넉한 시원함이 가득 마음을 채워준다. 계절이 지나가는
시간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내삶의 마지막도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까.
도시의 길에서 , 공원에서 만나는 올해의 가을은 유난히도 찬란했다. 첩첩산이 둘러싸인 간월재에서 만난
가을은 더욱 그렇다.
매일매일 영원을 향해가는 걸음에서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사진보다 더욱 선명한 마음의 눈으로 가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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