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라스코(CHERASCO) 알베리오네 신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
알베리오네가 서너살도 되기 전에 그의 부모는 페스키에레를 떠나 케라스코로 이사했습니다. 케라스코는 고대로마시대부터 지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기에 많은 나라들이 케라스코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전에는 샤르데니아 왕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793년에 프랑스와 합병되었고, 지금은 이탈리아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많은 전쟁의 상흔을 지닌 도시지만 이곳에서 평화협정이 이루어졌기에 평화의 도시라고도 부릅니다.
이곳에서 알베리오네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 담임이었던 카르도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었습니다. 그 때 잠시 생각하던 알베리오네는 신부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로사 카르도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중 한 사람이 사제가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유년시절을 지낸 지역의 들판과 농가들을 지나갑니다. 길 양편으로 넓게 펼쳐진 농지를 보면서 순례자들은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 어린 시절,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이 내어놓으신 농기구를 들고 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고 회상하신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케라스코 지역의 본당인 성마르티노성당.
어린 알베리오네 가족의 삶은 이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에도 자주미사에 참석했고 집에서도 함께 묵주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여덟살 때 알베리오네는 이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이성당의 성모님이 계실 위치에는 성당의 주보성인 순교자 성마르티노의 성화가 있는 것이 조금 특별합니다.
본당 주임신부님의 모범과 권고는 소년 야고보의 삶과 성소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당신부님은 아버지처럼 따뜻한 격려로 1900년 4월 브라 신학교를 나오게 된 알베리오네가 다시 사제성소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190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은 알베리오네는 어릴 때 다니던 이곳 성 마르티노 본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미켈레는 이미 3년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사제가 된 알베리오네의 첫미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성당 문앞에는 1907년 6월 30일 알베리오네 신부가 첫 미사를 거행한 거룩한 장소라는 설명이 새겨진 동판이 있습니다.
1998년 11월 15일에 바오로 가족은 이곳을 찾아와 알베리오네 신부를 기억하며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당앞 작은 광장을 야고보 알베리오네 광장으로 명명하고 알베리오네 신부의 흉상을 세웠습니다. 흉상 아래부분에는 “케라스코 시민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바오로 가족수도회 창립자- ” 라고 씌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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