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그곳

제주 바당의 기억

가별의 나무 2012. 7. 12. 16:14

 

제주도가 고향인 친구는 고생스럽거나 힘들 때면 제주도의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한다.
동해도 아니고 서해도 아닌 제주도의 바다를 보아야만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 힘을 얻는 다는 것이다. 제주도를 여러 번 가보지 않은 나지만 그 말을 이해한다. 물론 그 친구의 마음처럼 절절한 감정까지는 알지 못해도,

굳이 그 친구의 말이 아니어도 제주도의 바다와 바람, 떠도는 맑은 공기와 정겨운 풍경은 내마음을 그리움에 잠기게 만든다.

 

일 년 전 쯤, 제주 올레길이 열렸다는 소식을 만나고부터 나의 올해 휴가 목적지는 제주도로 정해졌다.

끝없이 마냥 걸을 수있다는 것을 생각만해도 행복해 지는데 더욱이 제주도의 풍정속에 잠겨 걷는 것이 아니던가.

 

정말이지 징하게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에 와서야 드디어 나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첫 번째로 나를 맞아준 것은 바람이었다.
활주로 주변을 싸돌아다니며 풀들을 눕히던 바람은 머리에 쓴 모자를 흔들어 대고 머리칼을 날리며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반겼다.

 

 

 

 

 

공항터미널에서 남원포구까지 가는 일주도로는 차선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교통량이 늘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제주도길 의 오롯한 맛이 사라지고 있는것 같아 서운했다.

 

남원포구에 도착하니 오후 한시가 되었다. 바다가 있는 길로 걸어 내려가긴 했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라 서성대다가 가까운 곳에 보이는 남원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제주 올레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

주인 아주머니가 요즘 많은 분들이 찾아온다면서 카운터 아래에서 꺼내온 종이에는  제주 올레의 유래와 8코스의 여정이 있었다.  내가 잘 찾아들어왔구나 싶었다. 안내도를 들여다 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기웃거리며 민박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나 같은 올레 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곳 남원 식당은 예약을 하면 민박도 가능하다고 했다.

오분작이랑 여러 해물이 넉넉하게 들어간 된장찌개 백반을 맛나게 먹은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남원 포구로 나왔다.

자 이제 시작이다. 시계를 보니 두시 반이 넘어 있었다.
8코스의 총길이가 15킬로미터 이니 대략 약 4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잘 걸어도 일곱 시가 넘을 것이다. 길을 마치기도 전에 어두워 질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일단 걷기로 했다.




바다가 조용해서 그런가. 남원 포구도 한적했다. 오른편으로는 오래된 제주 고유의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번화한 제주시내와는 사뭇 다른 옛스런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돌담이 허물어져 낡은 집안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작은 텃밭에 호박과 오이 덩굴이 뻗어있었다.

10여분 정도 걸었을까 남원 큰엉 산책로가 시작되었다.
여기부터는 바다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걷게 된다.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도록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간간히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산책로를 울타리 삼아 신영 영화 박물관과 몇 개의 리조트가 있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부터는 유럽풍의 개인별장이 드문 드믄 서있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것이 즐거웠다. 먼 바다에서 밀려와 바위에 들이치는 파도, 짙고 푸른 바다, 자유, 마음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시원함이 좋았다.


언제 부터인지 나무에 매달아 놓은 리본과 길바닥에 푸른 페인트로 그려 놓은 화살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내가 길을 잘 따라 가고 있구나 싶은 거다.
그리고 처음 이 길을 시작한 이들이 나를 안내 해주는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에 따뜻함이 고여 왔다.

심금물 지역쯤이 아닐까. 길이 울퉁불퉁하고 험했다.
잡초가 뒤엉킨 바위를 건너 바다가 보이는 길로 내려간다. 상큼한 노란빛 나리꽃이 눈길을 끌었다. 바위를 붙잡고 내려서니 빈 초소가 나타났다. 지금은 폐허처럼 버려진 초소 주변에 거칠게 자란 풀들을 쳐낸 자국이 뚜렷했다.
계속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길을 내고 깨끗한 간이 화장실을 세워 놓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뜻을 함께 하는 여행자를 위해 길을 닦은 이들의 정성이 그곳에 있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포클레인이 나무들을 쓰러 뜨려 땅을 넓혀 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붉은 흙에 제법 큰 묘목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섰다.



개인 농장 같기도 한데 다른 길이 없었다.농장 안으로 들어가니 길옆에 돌하르방이 서있었다.
정문을 찾으면서 돌아본 바다는 나무사이로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올레 표시가 나타났다. 조금 지친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신발을 무얼 신을까 고민 했었다. 결국 운동화가 아닌 등산화를 신고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만족하면서 터덜거리고 걸었다.

땅에 그려진 올레길 표시를 따라 걷다보니 바다풍경은 사라지고 오래된 돌담너머로 아직 물이 덜 든 귤농장이 이어진다. 걸음을 뗄때마다 달라지는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그냥 걸을 수 있는 이시간이 좋았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르게 귤농장을 둘러싼 돌담길은 키가 큰 동백나무 울타리길로 바뀌었다. 동백나무 군락지로 들어선 것이다.
이곳의 동백나무군락지는 고창 선운사나 해남 대흥사의 군락지처럼 어느 장소에 동백나무가 모여 있는 군락지와는 다르게 집의 울타리로 이루어졌다.
윤기 나는 두툼한 잎사귀가 가득한, 키가 크고 울창한 동백나무는 때아니게 붉은 꽃망울까지 달고 있어 마을길을 서늘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주고 있었다. 동백나무에도열매가 달린 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제주 올레길을 걷는 맛은 이렇게 숨어 있는 제주도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주 잠시 차도를걷다가 곧 위미항 조배 머들코지로 들어서서 바다를 보고 걸었다.
길옆에 있는 오래된 돌담집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초가집을 보면서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 살던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 정겨운 풍경은 내머리속에 온갖 상상을 불어넣는다.
넓고 넓은 바닷가 오막살이 집 한 채에 살던 아버지와 딸에서부터 고기잡이 그물에 걸려온 작은 게 이야기 등등 옛날에 들었는지 내가 꾸며낸건지 모를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납빌레를 지나 공천포 검은 모래사장을 짧게 통과했다. 점점 날이 저문다.
고요한 바다는 점점 짙푸러지면서 조용한 소리로 철썩댔다. 구름이 흐릿하게 깔린 하늘에서 황혼이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걱정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오늘 8코스 끝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아무집이나 찾아 들어가 잠자리를 청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걸으면서 적당한 집이 어딜까 찾기 시작했다. 이집은 너무 낡았고, 저 집은 내가 무서워하는 개가 있네.
마침내 한집을 찾았다. 귤농장을 하는 집이었다.
이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다로 해가 떠오르는 것도 볼수 있을 것 같구나 싶어서 대문을 들여다보면서 주인을 불렀다.
하지만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때문에 어정쩡한 내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마루를 건너 다른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주인을 부를 용기가 없어진 나는 다시 걷기 빨리 잠자리를 찾는 것이 급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를 찾아 들어 갈걸. 하는 후회와 함께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서두르는 걸음으로 망장포구를 지나 예촌 망에 도착하니 바다는 더욱 낮은 소리로 웅웅거리며 밀려들었다. 바다는 파도소리외에 다른 소리도 낸다는 것을 알았다.
일하는 시간이 끝났는지 어민협동조합은 비어있었다.

길은 다시 바다를 끼고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날은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너무도 아름답고 운치있는 길이었지만 저무는 시간에 혼자 걷는 내겐 그 여유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이 후회스러웠다.
다음에는 꼭 누구랑 같이 와서 바다의 경치에 경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어둠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숲길에서 완전한 어둠을 만나게 될까봐 겁이 났다.

다행스럽게 오솔길이 끝나고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나는 다시 근처의 농장에서라도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기웃거렸지만  보이는 건물은 축사뿐이었다.

실은 아무집이나 들어가 잠자리를 청할 주변이 못되면서 계속 기웃거리기만 하는것이다.

이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저 잠잘곳을 찾을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 길에 서있는 트럭의 운전기사님이 아줌마였다.

 숙박시설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니 큰길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어두운 큰길에는 오가는 자동차들만 오가고 있었다. 길에 서있는 사람은 나혼자였다.
계속해서 인가를 찾아 얼마쯤 걸었을까 불이 환하게 밝혀진 커다란 음식점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찾아가 주인에게 염치불구하고 잠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지친 내모습을 본 주인청년은 친절하게 근처의 펜션번호를 알려주고 가는 방향을 설명해 주었다.

소개받은 펜션은 효돈천 근처에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데리러 나와 주셨다.


겨우 고단한 몸을 누일 곳을 찾아 들어간 나는 잘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햇빛에 눈부신 바위로 이루어진 효돈천을  본 다음 한라산에서 발원하는 담수가 효돈 천을 지나 바닷물과 만나는 쇠소깍을 찾아갔다.

 

반짝이는 햇살이 물결에 은비늘을 만들고 있는 쇠소깍은 적막하고 아름다웠다.

옛날에는 더욱 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정에 싸여 사는 제주도 사람들은 복두 많지 싶었다.

  나는 뗏목이 오가는 것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어제부터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서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오늘은 서귀포 쪽으로 나가 올레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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