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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부근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
살과 피를 가지신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던 곳, 그래서 모든 것이 거룩한 땅. 성지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따라 다니던 순례의 기억은 행복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로는 성경을 묵상할 때 예수님이 사셨던 구체적인 지역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의 행동과 말들을 상상하게 된다. 가난하셨지만 불행하지 않으셨고 권력이 없었지만 힘이 있으셨던 예수님,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살리시는 분. 율법을 뛰어넘어 사람을 살리는 행위가 죄가 되어 죽음에 이르신 분, 내 경험에 바탕을 둔 묵상은 예수님에 대해 극히 단편적으로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다.
‘사해부근에서’의 주인공인 ‘나’는 끊임없이 그의 인생 언저리를 맴도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 그분이 살던 이스라엘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건조한 광야 이스라엘, 이천년 전에 살던 예수의 흔적은 지진과 전쟁으로 땅속에 묻혀버렸다. 몇 세기가 지난 다음 탐사와 발굴로 예수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지만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는 예수의 존재를 마음의 눈으로 따라가는 ‘나’의 시선은 능력 있는 구원자가 아닌,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와 함께 하다못해 바로 그 무능한 사람이 되시는 예수를 본다.
엔도 슈샤쿠가 만난 예수님은 그동안 내가 지녔던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노력하고 뭔가 고쳐 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상선벌악적인 요소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적인 관점을 넘어서게 한다.
배신을 당하더라도 당신의 사랑을 거둘줄 모르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슬프기까지 하다. 가난과 비열함으로 한없이 내려앉은 바로 그사람이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동안한심하다고, 시시하다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내가 제외 시켜버렸던 많은 예수님을 이제 어떻게 만나야 할까.
“나는 다만 사람들의 슬픈 인생을 하나하나 지켜보았고 사랑하려 했을 뿐입니다. …내가 한번 그 인생을 스쳐 지나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엔도 슈사쿠 /이석봉 옮김/ 바오로딸 /392 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