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기행
등대가 있는 바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에 도착하여 제1여객선 터미널을 찾아가 홍도로 가는 배를 탔다. 바다를 향하는 배 뒤로 갈매기들이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홍도를 가는 길에 들리는 비금도는 무척 큰 섬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렸다.
흑산도가 가까워지자 섬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목포에서 함께 배를 탄 외국인 서너 명이 사진장비를 들고 흑산도에서 내렸다. 세상의 작은 나라, 그중에서도 숨어 있는 섬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사진작가들의 열정과 작가정신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배안에서도 거의 말이 없이 각자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의 오지와 명승지들을 찾아다니며 작업을 하는 그이들의 삶이 부러웠다. 물론 고생도 그만큼 할 거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배는 목포를 떠난 지 두 시간 반 만에 홍도 일구에 도착했다.
원래의 계획은 홍도에 도착한 당일에 유람선을 타고 홍도 이구로 넘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요즘은 여행자들이 없어서 오전에 한번만 뜨는 유람선을 오후에 도착한 나는 탈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홍도 일구에서 잠을 자고 내일 홍도이구로 가는 배를 타기로 했다.
나는 부두에 나온 아주머니를 따라가 방에 짐을 내려놓고 배낭에 카메라만 담아 들고 나왔다. 섬주변은 지저분하고 비린내가 심했다. 시멘트를 바른 좁은 길이 이리저리 뻗어 있는 골목을 따라 언덕을 넘어서니 홍도를 소개하는 팸플릿에서 본 몽돌해안이었다. 전에는 무척이나 완만하고 아름다웠을 둥근 돌 해안인데 지금은 지저분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해안근처는 지저분하고 생선들이 부패된 냄새가 심했지만 물은 무척이나 맑았다. 수많은 고기들이 떼 지어 오가고 있었다. 해안 쪽으로 흰 우산처럼 펼쳐진 죽은 해파리가 물결에 밀려다녔다.
관광객이 드문 섬은 조용해서 좋았다. 경사진 땅에 서있는 작은 마을을 오르내리며 바다와 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먼 곳의 섬들을 바라보며 마을길을 돌았다. 제일 높은 곳에 우체국이랑 교회가 있었다. 그곳은 바다가 아주 잘 보이는 장소였다. 홍도전체 어디를 가나 지저분한 것이 아마도 주민들의 관광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벼르고 찾아온 곳인데 자꾸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모처럼의 여행이 즐겁지 않을 것 같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 해도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해방감이 나를 위안해 주었다. 자생난 전시장 뒤편으로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 올라가면서 보니 아주 오래된 군락지였다. 예전엔 서낭당이나 굿당이 있었음직한 돌무더기가 있었다. 다가오는 어둠속에구불구불한 나무둥치들이 신비로우면서도 무서움을 자아냈다. 그만 내려갈까 망서리고 있는데 노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언덕을 다 올라가 바다를 배려다 보았는데무성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동백나무 숲에서 내려와찾아간 식당은손님이 없어서인지 식탁가득 멸치를 쏟아 놓고 다듬고 있었다. 나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멸치를 같이 다듬었다.
식사를 하면서 홍도이구로 넘어가는 등산로를 물어보았더니 산길이 있지만 어렵다면서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는수 없이 다시 마을은 한 바퀴 돌고 정해둔 여관으로 들어갔다. 비탈진 땅에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마을을 돌아보고 나니이보다는 조금 더 나은여관이 있을 것 같았지만 이미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하는 수가 없었다. 계단으로 이어지는 허술한 삼층 건물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혼자라서 그런지자꾸 무서운 생각이 드는걸 물리치면서 세수를 했다.가져온 책을 읽다가 불을 껐지만 외등이 너무 밝아 방안이 훤했다.
다음날 아침에방을 정리하고 나올 때 까지 어제본 주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줌마의 피곤하고 재미없는 얼굴에서 느껴지던 고달픈 삶을 혼자서상상해봤다.
부두에 내려와 돌아다니면서 뭔가 사먹고 사진을 찍는 동안 유람선이 출발을 알렸다.
일반적인 홍도관광은 유람선을 타는 것이 주목적이다. 홍도는 바다에서 섬전체를 보아야 바위와 바다가 만들어낸 다양하고 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홍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타고 홍도를 한 바퀴 돌고 다음날 떠나는 흑산도경유 목포행 배를 기다리면서 하룻밤 자고 떠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머물다 가는 홍도 일구는 섬전체를 도는데 길어도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유람선 관광은 홍도여행에서 필수이기도하다.
하늘은 그리 맑지 않았지만 바다는 너무도 잔잔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익살맞게 홍도의 기암절벽을 설명하는 안내 아저씨의 설명에 따라 관광객들은 탄성을 자아내고 경탄하며 홍도의 경관을 즐겼다. 굳이 설명이 아니더라도 홍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안내 하는 동안 계속 아저씨는 오늘 같이 바다가 잔잔하고 햇볕이 적당한 날씨는 거의 만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만큼 오늘의 관광객들은 행운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배에 탄 사람들은 느긋하게 안내 아저씨의 말에 따라 바위들을 돌아보며 탄성을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람선은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과 바위사이의 동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오면서 여유 있게 섬을 돌았다.
유람선이 섬을 반 이상 돌았을 즈음 도착한 홍도 이구에 도착했다. 그곳에 내리는 사람은 나와 나이가 지긋한 남자뿐이었다. 그는 섬주민 이었다.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홍도이구는 아직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화로 예약해둔 민박집 주인의 이름을 댔더니 누군가가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줬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는 그저 그런 집이었다. 마침 주인아주머니 혼자 삶아 건진 멸치를 널어 말리고 있었다. 아마도 요즘이 멸치가 많이 잡히는 철인가 싶었다.
나는 짐을 방에 들여 놓고 아주머니를 도와 멸치를 고르게 펴 널었다. 그리고 등대를 찾아갔다. 내가 홍도 이구에 온 것은 등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등대 자체야 다른 섬에도 있지만 등대를 가는 산책로가 멋지다는 것, 조용하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 뭐 그런 이유들이 있었다. 사실 홍도 이구는 산책할 곳이라고는 등대밖에 없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은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한없이 터벅터벅 걷는 산을 더 좋아하지만 아주 가끔 바다도 그리워 나는 외딴 섬을 검색해서 교통편과 시간을 연구해서 큰맘 먹고 여행을 떠난다.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끄트머리쯤에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동백나무 사이로 계단이 있었다. 나무계단을 다 올라서자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동백나무 숲이 나타났다.
그 울창함속으로 혼자 들어서니 두려움이 살짝 일었다. 그렇게 십오 분 정도나 걸었을까 하늘이 훤히 뚫리고 하얀 등대가 보였다. 그곳에서 보이는 등대 전망이 가장 좋은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숲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작은 광장에 도착했다. 삼면이 바다로 트인 그곳엔 정갈하고 잘 지어진 관사가 몇 채있었고 하얗게 빛나는 우람한 등대가 서있었다. 그곳에 등대가 생긴 역사가 꽤 되었다는 안내판이 있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현대적으로 다시 지은 건물이었다. 등대 옆에 있는 관리사무소 이층으로 올라가니 끝없는 바다가 눈 아래 있었다. 등대 지킴이 아저씨 둘이 있었는데 한가한 생활 중에 나타난 여행자가 반가웠는지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커피도 한잔 타주었다. 그분들에게 내가 읽으려고 가져갔던 시화집을 주었더니 무척 기뻐했다. 나는 그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한없이 넓은 바다에 나 혼자였다.
홍도 일구에서 보던 것과 다른 바다가 눈앞에 있었다. 짙푸른 물속에서 수초와 미역들의 흐늘거리는 움직임이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물속으로 이끌려 들어갈 것 같아 무서웠다. 깊이를 모르는 바다는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가끔 물결이 해안으로 밀려와 부딪치는 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광대하게 열린 바다 앞에서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내존재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물속을 바라보고 있다가 바위섬과 연결되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난간을 잡고 건넜다. 바위섬에는 시멘트로 만든 선착장이 있었는데 어느 해 파도인지가 선착장 끄트머리 부분을 마구 부숴 놓았다. 조심스럽게 바다 쪽으로 다가가 물속을 들여다보니 살아있는 해파리가 분홍빛 둥근 양산 같은 머리를 펼치고 숱한 촉수를 움직이며 부유하고 있었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대로 우아한 모습으로 물결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시간을 잊고 짙푸른 물속에서 부유하는 해파리를 보다가 시선을 돌리니다리 아래쪽으로 작은 배 한척이 떠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배가 잘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위에서 부부가 그물을 만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았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분들은 계속 물결따라 흔들리는 배위에서 그물에 걸린 멸치 같은 잡고기들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있었다. 작은 것들은바다로 돌려보내고 큰물고기는 골라서 따로 두었다.
말없이 손을 놀리는 부부사이에 보이지 않는 깊은 정이 느껴졌다. 나는 흔들리는 배위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저이들의 인생도 저처럼 흔들리며 지금까지 왔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어느 때는 큰 파도에, 어느 때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물결을 타고 살아왔겠지.
일을 마친 부부는다리 아래를 지나 넓은 바다로 들어갔다. 저 고기잡이 부부에게 바다는 필요한 모든 것을제공해 줄것이다.그들에게바다는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지만 가끔 바닥까지 뒤집는 해일이나 폭풍으로 심술을 부릴 때도 있을 것이다.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제어할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공생의 삶을 사는 살아있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들길을 걸어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주인아줌마와 점심을 함께 먹은 후 잠시 낮잠을 자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부둣가를 서성대며 이것저것 사진을 찍은 후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등대 쪽으로 올라갔다.
언덕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는 마치도 멀리 펼쳐진 갯벌처럼 질척해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발은 좀 빠지더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이리저리 바라보면서일몰의 시간을 기다렸다.
멀리보이는 섬과 바위들은 끊임없이 다가와 부딪치는 파도의 성화를 묵묵히 견디어 내고 있었다. 어느 때는 강하게 어느 때는 약하게, 다가오는 파도를 견디느라 바위에는 굵은 주름이 잡혀있었다. 누가 뭐라해도 말없이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는 무저항의 저항. 그것이 바위가 삶을 사는 지혜일 것이다.
이렇게 여유롭게 세상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좋다. 바다는 점점 더 금빛으로 물들어 가며 반짝였다. 온통 황금이었다. 참으로 경이로웠다. 혹시나 옛날 연금술사들은 일몰시간을 그들의 작업에 응용하지 않았었을까. 멀리 황금물속으로 배한척이 길게 물길을 내며 지나갔다. 이세상을 이렇듯 아름답게 만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 절로 우러나왔다.
종일토록 뿌옇던 하늘은 해가 바다로 내려오기 전에 구름으로 감싸 버렸다. 아쉽다. 은빛에서 금빛으로, 그러다 빛을 잃어가는 바다를 옆으로 보면서 나는 총총히 숙소로 돌아왔다
육지에서 섬으로 시집왔다는 민박집 아주머니는 남편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는 토박이 섬여자들과 달리 자기는 뱃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근처에서만 잡힌다는 열기라는 붉은 생선을 아줌마는 내가 있을 동안 계속 굽거나 아니면 매운탕으로 요리해 주셨다. 아줌마의 말에 의하면 열기가 생선중 맛이 최고라고 자랑했다. 내생각에도 열기가 제주의 옥돔보다 더 맛이 좋았고 느끼한 맛이 덜한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부둣가에 내려간 나는 배를 기다리며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줄에 널어놓은 생선들과 그 아래로 보이는 퍼렇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바닷물이 출렁거리며 드나들고 있었다.
새벽 일찍 바다에 나갔다 들어와 그물을 고르는 부부, 삶아 건진 멸치를 너는 아줌마. 어떤 아줌마는 라면 한 봉지를 뜯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새벽 일찍 일어나 일하고 이제야 아침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몸짓은 아침의 바다처럼 활기가 있었지만 오랜 습관으로 몸에 밴 묵묵함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 갈매기가 끄륵거리며 날아다녔다.
나는 평생을 바다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을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내가 상상 할 수 없는 삶의 질곡과 기쁨들이 있을 터이다. 나는 바다가 주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삶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오염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랐다.
다시 홍도일구로 돌아오는 유람선을 탔는데 어제 탔던 그 배였다. 바다에서 보이는 홍도의 기암기석들의 이름과 유래를 설명해 주시던 안내 아저씨도 같은 분이었다. 재미있던 것은 유람선이 어느 바위 가까이 접근하니 어디선지 작은 고깃배가 다가왔다.
그 배에 있던 한사람이 생선 배를 갈라 씻으면 다른 사람이 회를 뜨기 좋게 반으로 갈라 뼈를 추렸다. 마지막 아저씨는 빠른 솜씨로 회를 떠 초고장이 담긴 일회용 도시락에 담았다. 그 배를 내려다보던 여행자들은 모두들 다투어 회와 소주를 샀다. 일행도 없고 날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소주와 회를 맛나게 먹는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멋진 바위섬을 배경으로 배에서 싱싱한 회를 즐기는 것은 정말 어디서도 맛보지 못하는 재미일 것이다.
유람선은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홍도 일구에 도착했다.
목포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나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홍도의 모습을하나라도 더 눈에, 마음에 담아가려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손님을 부르는 포장마차 주인들.횟집과 질퍽거리는 선착장 좁은 길.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 그곳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
목포를 향해 가는 배위에서 멀어져가는 홍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