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 이벽
조선에 천주교 신앙의 길을 낸, 이벽 세례자 요한의 생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찾아 ‘처음’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책은 유학(儒學)의 나라 조선에 최초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중심으로, 조선에서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이 태동하게 된 배경과 그 탄생 과정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재구성한 역사소설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이벽의 성품과 학문 세계, 가족 이야기, 그가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벽과 정약용, 두 사람의 우정과 학문, 종교가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전개되면서, 한국 초대교회 선조들의 외적인 모습과 언행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하는 문장들은 그 옛날 조선의 분위기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새로운 학문에 대한 이벽의 지식 탐구의 길은 오묘한 섭리를 통해 신앙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벽이 그리스도교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 길에서 교류하던 조선 선비들의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 그리고 유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절실함이 맞물려 마침내 조선에 천주교의 씨앗이 뿌려지는 과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 옛날의 풍정과 풍속, 생활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깊은 겨울,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열망으로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천진암 주어사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강직함을 지닌 이벽의 상황에 동참하고,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새로운 서학을 탐구하던 젊은 학자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기원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깨닫는 모습에서 사람들을 당신께로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서울 청계천 변에 김범우의 집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지금은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그곳에서 이벽을 비롯한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용이 은밀하게 천주교 신앙을 연구하고 나누던 모습과 그들이 만나고 체험하던 신앙의 열기를 책을 통해 더 가까이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찾은 신앙을 펼치지도 못한 채 탄압당하고 문중에서도 배척받아 홀로 죽음의 길을 떠남으로써 이벽의 길은 끝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벽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처럼 다시 태어나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미지의 세계를 처음 걸어간 광암 이벽의 첫발자국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지금 저의 신앙이 스스로 찾고 이루어 낸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진리를 발견하고 첫걸음을 걸어간 신앙 선조들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하느님 은총 안에 살고 있음을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