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 책방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가별의 나무 2020. 8. 16. 16:28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 리 호이나키의 카미노 순례길>(김병순 옮김, 달팽이 펴냄).

 

이 책의 저자 리 호이나키(1928-2014)는 특별한 인물로 수도회소속 사제로 중남미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사제직을 떠나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정치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의 삶을 선택하였다. 스스로 일하며 살아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호이나키는 65세가 되던 1993년에 혼자서 프랑스 생장 피오토르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산티아고 성야고보대성당에 도착하는 800 km이상의 여정을 31일 동안 걸었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여러 가지 길 중 가장 정통적이라고 알려지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따라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뛰어난 철학적 사유로 전해준다.

 

1000년 이상 이어지는 전통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오래된 마을과 수도원과 성당을 순례하면서  스페인의 역사와 현재를 바라보는 저자의 글을 통해 순례길에 얽힌 풍부한 지적 통찰을 만날수 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장소에 얽힌 이야기들, 지금 그곳에서 사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때로는 산속에서, 빈 헛간에서 잠을 청하는 순례자 호이나키, 자연 속에서 느끼는 흙의 향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을 사랑하는 여행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지배하려 드는 인간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호이나키는 규율에 매이지 않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뿌리인 가톨릭 신앙을 재발견한다. 신학자로서, 환경운동가요 철학자 농부로 살아가는 그의 시각은 지금까지 본 산티아고 순례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삶의 통찰과 영적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순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혼자 걷는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속한 세상을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예전에 큰 슬픔으로 마음이 닫혀 있을 때 토요일마다 혼자 북한산에 올랐다.

그러면서 점차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던 기억이 있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지만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던 호이나카의 글처럼 내 맘을 산티아고 길로 이끈 책은 없었다. 그의 글은 길을 걷는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변화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