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 책방

텍스트의 포도밭

가별의 나무 2018. 8. 7. 16:01

 

 

 

이반 일리치 지음

                                                                                     정영목 옮김 / 출판: 현암사

 

이반 일리치(1926, 9, 4 ~ 2002, 12, 2)는 오스트리아 출신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였으며 철학자, 역사학자이다.

이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으로 녹색 운동가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 사상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리치가 '읽기'에 관하여 쓴 책이라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은 12세기 대수도원장이자 학자였던 성 빅토르의 후고가 1128년에 쓴 <디다스칼리콘>이라는 책을 해설한 것이다.

후고의 책에서 보여지는 중세 수도사들의 고유한 기도로서의 읽기와 쓰기(성경이나 성인들의 가르침을 복사하는 것)

 지적인 작업으로의 읽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후고 시대의 수도사들은 주의를 기울이며 소리 내어 읽고 필사하는 방법(스투디움, studium)으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을 양성하던 후고는 제자들에게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으며 글에 담긴

상세한 것들을 머릿속에 담도록 이끌었다. 독서를 통해 영성을 깨우치며 신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후고시대의 수도원 도서실에서 있었던 읽기 작업을 통한 수행의 삶을 일리치는 자신이 후고이기나 한것 처럼 잘 전하고 있다. 12세기 후고시대의 널찍한 수도원 도서실은 수도승들이 책을 필사하거나 큰소리로 읽으면서 영적세계로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는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상세하게 후고시대 지식 세계의 중심이었던 수도원 수도승들의 풍경을 전해주어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도와 독서의 세계를 맛보게 해준다.

당시 그리스도교의 교부인 성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스승이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묵독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다고 한.

점차적으로 15세기에 들어서 인쇄술이 발전하여 대량으로 인쇄된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점차적으로 소리 내어 읽기는 눈으로 보는 읽기로 변해왔다. 영성수련과 영적체험을 목적으로 하던 읽기는 이제 지식을 획득하는 공부가 되었고, 수도사들도 눈으로 텍스트를 보면서 침묵 속에 기도하는 묵독으로 변했다.

일리치는 성경을 읽어라. 그것이 모든 꿀보다 달콤하고 어떤 술보다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막 등장하던 1993년에 이 책을 썼다.

시대가 변하여 읽을거리는 넘쳐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지만 후고가 전하는 진정한 읽기는 삶을 변화시키는 읽기이다. 그렇다면 읽을거리와 읽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저명한 신학자 일리치에 의하면 후고가 읽기를 통해 도달하려는 지혜는 그리스도였다사람은 읽기를 통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는 이 책이 일반적인 읽기에 관한 지식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교의 전통인 성독(聖讀, 렉시오 디비나)에  관하여 다룬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리치가 소개하는 후고의 책,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의 부제가 데 스투디오 레젠디(de studio legendi “읽기 공부에 관하여”)라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