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아브라함

한여름인 칠월과 팔월에 우리 수녀들은 사도직 일선에서 떠나 여주에 있는 기도의 집에 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모처럼 덥고 복잡한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사도직을 하는 수녀들을 만나 시원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로 7월 하순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던 일이 생겨 연초부터 계획한 휴가를 포기해야할 일이 생겼다. 섭섭하긴 하지만 수도회를 위해 나의 계획을 놓아야 했다.
이처럼 살다보면 나를 위해 계획한 것을 바꿔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 옛날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정처 없는 여정을 걸었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서 하느님의
묘하신 계획에 경탄하곤 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만하는 아브라함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라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사천 년전 성경속 이야기로 치부하곤 했었다.
그런데 송봉모신부의 묵상을 통해 만난 구약의 인물 아브라함이 오늘 나의 삶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리야 산으로 가는 길‘ 이라는 부제가 붙은 첫 번째 책은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으로 가서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치려하는 장면과 서자인 이스마엘이 관계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파란 많은 생애중 가장 큰 시련이었을 사건, 뒤늦게 얻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하느님이 되돌려 달라고 했을 때 그는 그동안 하느님이 내려주신 은총까지도 의심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요나처럼 하느님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악을 데리고 달아나고 싶었을지도, 극한 마음의
갈등 속에서도 끝내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선택한다. 그것은 그동안 하느님과 맺은 관계가
친밀했고 하느님께 드리는 신뢰가 무엇보다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주 작은 희생을 바치면서도 하느님께 조건을 걸곤 했다. ‘하느님, 제가 당신을 위해 이것을
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이것을 주십시오’라고,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가면서 그런
조건부적인 청원의 기도는 필요 없게 되었다.
하느님은 내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을 포기할 때 당신 선의에 따라 더 큰 것-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 한 방법-으로 되돌려 주심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고자 나를 부르신 하느님의 선택이 정말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올바른 판단력도 없고, 쉽게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리는 경향과 내 것을 포기해야 할 때 망설이는
모습,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 비겁하게 침묵하는 내모습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두 번째 책은 나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하려는 간교함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나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해주었다.
하느님의 약속만을 믿고 걸어가는 아브라함 또한 세상 것에 대한 애착과 갈등, 편애와 고뇌,
눈앞의 이익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인간적으로는 사리사욕을 꿈꾸다가도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이 가던 방향을 돌릴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시며
그를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실수 있었던 것이다.
약함과 어두운 그늘을 지닌 인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하느님,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은 오늘도 나를 위해 세상의 모리야 산에서 직접 당신께 드리는 제물을 마련하신다. 그리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미덥지 못한 나를 통해 감히 당신을 일을 하기를 원하심을 느낀다.
영원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통해 나를 이끄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계획을 따라 세상 것을 추구하려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꿔나갈 때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나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저자: 송봉모 / 바오로딸 출판사/1권 : 232쪽 9,000원/ 2권: 392 쪽 11,000원